아버지의 7주년 기일을 기억하며

- 조익현 아버지. 1년에 한번 불러보는 그 이름

조영관 발행인 | 입력 : 2020/01/09 [23:00]

 

  조익현 아버지. 1년에 한번 불러보는 그 이름

© 챌린지뉴스

       

202014일() 오전 10시에 이천 호국원에 아버지의 7주년 기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가족들이 모였다. 19일(목)이 기일이지만 가족들이 모이는 형편상 조금 일찍 모인 것이다.

 

아버지는 193284일 전북 여산 출생으로 201312682세로 별세하셨다. 그래서 음력으로 매년 1215일로 기일을 정하여 기념일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가 현재 살아계시면 89세 이시다.

 

아버지의 60주년 환갑을 기념하기 위하여 가족들의 추억록을 만들었고

그때 쓴 것을 토대로 다시 한 번 아버지를 기억해본다 

 

나의 어린시절 기억속으로 돌아가 본다. 내게 아버지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아마 대여섯살정도가 아닐까 싶다. 여산에서 정읍으로 이사 가려고 계획을 하던중 아버지와 내가 기차를 타고 간 것으로 기억된다.

 

기차 안에서 함께 이야기 하던 것이 생각나고, 시골집에 안전하게 되돌아 와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게 첫 기억이다.

그것이 나와 아버지와 완전한 첫 만남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게 큰 소리로 욕하거나 꾸중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누구라도 잘못한 것도 많을 텐데 너그러이 받아주신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정읍에서 여산으로 전학을 왔을 때

아버지는 학교에까지 자전거로 나를 태워 주시곤 했다.  

아마 전학을 와서 길을 헤맬까 걱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근처 동네인신막에 다다라서는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는 것을 아이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는 시기였다.

이렇게 한동안 아버지의 도움으로 자전거 뒷좌석에 타고 등교를 하곤 했다. 그 후에는 오리쯤 되는 비포장도로를 걸어서 다녔다.

 

시골에서 우리 집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여행을 가거나 멀리 가본 적은 없다.  

단지 아버지와 함께 논으로 밭으로 일을 함께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봄에는 고추밭에 물을 주었고, 여름에 논농사를 위해 소를 몰고 모심기전에 땅을 평평하게 다지는 일을 도왔다.

 

내가 논에서 소를 몰았던 것이 기억난다.

어린 소년이 큰 소를 우로 좌로 마음대로 이동시키며, 모심기 땅을 고르게 했던 경험은 큰 소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했다.

 

여름에 담배농사를 짓기에 담배를 비닐하우스 즉 "건조장"에서 담뱃잎을

엮은 새끼줄을 함께 달았다.  

우리 집 앞에서 토마토 농사를 지어 가끔씩 지인이 오는 경우 따주거나 일정의 돈을 받고 팔았던 기억이 있다.

 

우리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셔서 밤늦게 까지 집에 오시질 않을 때면 삼거리 휴게소 주점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가끔 볼 수 있었고 내가 갈 때면 아버지는 맛있는 과자를 사주었다.

내가 가는 이유는 아버지를 모시러간 것 보다는 무엇인가

군것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끔 술을 드시면

나한테 " 열심히 공부하라, 훌륭한 사람이 되라" 하셨다.

아버지의 나에 대한 소망은 술을 드셔야만 말했던 것 같다.

 

평소에는 말이 없으셔서 살아가는 지혜, 철학 등 고상한 이야기는 많이 듣지 못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성장하면서 스스로 알아서 깨치라고 숙제를 주신 것 같다.

 

내가 살던 집 앞산과 뒷산은 언제나 좋았고 자연과 함께 벗하며 살았다.

가끔은 아버지와 산에 가서 뗄감나무도 구했다.

 

아버지는 내게 힘든 것은 시키지 않으셨다.

내게는 편안하고 든든한 아버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에 자식들과 함께 하고자 고향을 뒤로한 채 낯선 서울에 올라오셨다.

아버지는 농사밖에 몰랐기 때문에 서울에 적응하기가 힘드셨을 것이다.

이렇다 할 기술도 없고 장사할 돈도 없었기에 어려우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생계형 일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시작된 일은 현재 까지 꾸준히 하셨다.

 

내가 대학을 다니면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그들의 가정환경과 비교가 되었다

그 당시에 아버지의 직업이 근사한 것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 겪는 홍역이었고, 나의 인생은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후광을 입고 성공하는 것 보다는 내 스스로 노력하자.

그러면 길이 보이고 해결책이 나올 것이다."라고 스스로 위안 하였다.

 

아버지는 15년 동안 서울에서 줄곧 일을 하셨고 나의 학비도 책임 지어 주셨다.

내가 군대에 다녀와서 열심히 공부한 때에 장학금도 받아 학비에 보탰다.  

여름방학에는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며 단기간에 돈을 벌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부지런하고 성실하셔서 주변에서 인정을 하신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령임에도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아버지는 건강하셔서 크게 아픈 적이 없으셨다. 때로는 힘들고 아프더라도 참고 일을 하였다.  

1년도 개근하기 힘든데 15년을 개근 하셨으니 정말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버지는 우리 자녀들에게 말씀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부지런함성실함몸과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아버지의 7주년 기일을 맞이하여 환갑 기념 추억록을 만든 자료를 토대로 하여 정리해보았다

겨울의 뒷모습에는 묵묵히 지켜낸 아버지가 있다.

말보다는 마음으로 진하게 남겨준 나의 아버지.

이제는 어린 제가 아버지라는 말을 듣는 중후한 나이가 되었다.

나는 또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남을 것인가.

한 장의 좋은 흑백사진을 남겨주고 싶다.

      

  조익현 아버지와 김종례 어머니 © 챌린지뉴스



겨울의 끝자락

-조영관 /시인

 

겨울의 뒷모습에는

묵묵히 지켜낸 아버지가 있다.

겨울의 추억 속에는

모닥불 같은 어머니가 있다.

겨울의 끝자락에는

봄길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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