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경을 초월한 4.19동포후원장학회 공동회장 이광수

김명수기자 | 입력 : 2019/07/30 [17:33]

[인터뷰] 국경을 초월한 4.19동포후원장학회 공동회장 이광수

 

19604.19혁명의 현장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대학생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4.19정신을 잊지 않고 그 맥을 2019년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광수 4.19선양육영재단 명예이사장 겸 4.19동포후원장학회 공동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국가에 봉사하며 사회에 헌신하는 4.19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올해로 4.19혁명이 일어난 지 59주년을 맞았다. 이광수 어르신의 기억 속에 4.19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성균관대 2학년 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4.19가 터졌다. 공부보다 시국이 먼저였다. ‘대신 교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불타는 젊음과 민주화의 열망으로 시위 대열에 합세하여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치던 그도 이제 80대 노인이 되었다.

두 번의 암수술을 받을 정도로 건강은 많이 안 좋지만 그의 선행은 국경을 초월한다. 네팔을 오가며 10여 년째 현지인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네팔을 10회 이상 방문할 정도로 장학사업에 헌신적이다.

인천에서 네팔까지 비행시간만 해도 편도 직항으로 6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고령인데다 몸까지 성치 않은 그가 아닌가!

이광수 명예이사장이 4.19선양육영재단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방문길에 우연히 연변TV를 틀었더니 4.19동포후원장학회 이세현 회장이 화면에 등장했다. 이세연 회장이 출연하여 조선족동포에게 4.19장학금을 주는 내용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큰 감동을 받고 장학회에 참여했다.

 

  

이광수 어르신은 방사선, 항암치료와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 720일 이광수 어르신을 처음 만났다. 당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야왼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이광수 어르신은 의외의 대답을 했다.

건강이 안 좋다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멈출 수는 없어요. 몸이 쓰러지더라도 정신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한 계속할 작정입니다. 그게 4.19정신 아니겠습니까?”

갈수록 각박해지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이자 교훈 같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쇠망치로 한방 얻어맞은 충격이었다.

알고 보니 이광수 어르신의 건강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두 번의 암수술을 받는 등 10여 년째 병마에 시달려왔다. 위암은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전립선암은 현재 항암치료중이다.

()를 모두 절제한 이후로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오랜 투병생활을 해오다보니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이광수 어르신은 기자와 처음 만난지 10일이 지난 후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이광수 어르신과의 두 번째 만남은 병실에서 이루어졌다.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이광수 어르신은 4.19정신 계승과 장학회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에겐 소원이 하나 있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에 4.19 혁명의 현장에서 시위 대열에 참여한 역사의 주인공으로 ‘4.19 국가 유공자자격을 인정받고 사후(死後)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4.19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일에 평생을 허신해온 이광수 어르신의 마지막 소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인터뷰를 마친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people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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