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카타르에 살면서 중동, 미국, 유럽 오가며 비즈니스… 30대 글로벌 여성 이세은

고교 재학중 혼자 미국 건너가 대학졸업후 전문회계법인 운영하다가 세계무대로 영역 넓혀

김명수기자 | 입력 : 2019/06/26 [08:27]

[인터뷰] 카타르에 살면서 중동, 미국, 유럽 오가며 비즈니스30대 글로벌 여성 이세은

 

“30대에 30개의 장래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꿈이 많은 여자입니다.”

 

 

미국에서 회계법인을 설립 운영해오다가 중동 카타르로 이주해서 중동, 미국, 유럽을 오가며 왕성하게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이세은씨를 보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 실감난다.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2001년 혼자 미국에 건너가 공부를 계속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현지에서 전문회계법인을 설립 운영해오다가 세계무대로 비즈니스 영역을 넓혔다.

중동, 유럽 쪽 업무가 많아지면서 2016년에는 아예 남편과 함께 중동으로 이사했다.

중동에 터를 두고 미국, 유럽을 오가며 진정한 글로벌 우먼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딸이세은 씨의 자기소개를 듣는 순간 덩달아 마음이 뿌듯해지고 나도 뭔가 도전하면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이세은씨는 대학에서 재무와 회계를 복수 전공하고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회계 법인을 운영해왔다.

대형 회계 법인에 근무하다가 고민 끝에 마음이 맞는 대학 동기를 끌고 나와 그가 직접 설립한 회계 법인이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의 클라이언트를 돕는 몸집은 작지만 날렵한 '닌자 회계법인'으로 키울 생각입니다

이름(세은)처럼 세상에 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세은씨를 기자는 2013년 6306회 북포럼(bookforum) 생방송 토크에서 처음 만났다.

공교롭게도 기자가 출연한 북포럼 생방송 토크에 진행자(MC)로 합류하기 위해 미국 휴스턴에서 휴가를 내고 서울로 날아왔다는 이세은 씨의 열정에 깜짝 놀랐다.

어찌 보면 그런 열정과 도전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고교 재학 중에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강행한 자체부터가 당돌하기 짝이 없다.

단순히 경력과 학력을 나열하기보다는 무엇이 그를 그토록 열정이 뜨거운 여자로 만들었으며 어떻게 미국에서 살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사춘기시절 부모님의 배려로 한 달 간 미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미국고등학생들과 같이 수업 듣고 점심 먹어가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지켜보고 많은 교훈을 얻었어요.”

세상이 얼마나 큰 지 가늠할 기회가 없던 시절에는 오직 학교 성적 1등만이 목표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주어졌던 환경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세상이 우물 밖에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한 달간의 미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부터 어떻게 하면 미국으로 대학을 갈 수 있는 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를 누비는 국제변호사였던 제 꿈하고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지요.”

어린 마음에 국제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나라를 지키는 일을 먼저 하고 영어를 제대로 배워야한다는 의무감에 카투사 (KATUSA)를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다짜고짜 카투사에 전화를 했다. 그 때 여자는 뽑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충격이 컸다.

그때는 심각했지요. 그래서 더 미국에 가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어요.”

15살 소녀의 말도 안 되는 영어수준으로 미국대학들에 편지를 쓰고 입학조건이 적힌 문서들을 보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미국대학들이 큰 봉투에 멋진 우표를 붙여서 모집요강을 보내왔어요. 그런 봉투들이 집에 도착할수록 자신감이 붙었지만 아직 어떻게 가야하는지 방법을 몰랐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는 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에 방학을 반납하고 영어와 수학공부에 전념했으나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마음이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다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공부에 매달리던 그 때 한줄기 빛과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한겨레신문과 미국무성이 함께 주관했던 교환학생공고가 났다. 시험에 통과하면 미국에서 공립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내용을 보는 순간 귀가 번쩍 띄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도착하자마자 시험을 봤어요. 1012000년이었습니다

시험을 치른 지 이틀 후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합격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몇 달만 있으면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미국으로 그것도 혼자 공부하러 가겠다는 딸을 두고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애가 타면 반대를 했겠는가.

저의 청개구리 기질이 이때부터 다져졌나 봅니다. 부모님이 말릴수록 제대로 한 번 해보겠다는 결심만 더 굳어졌으니까요.”

20011.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도착했던 그 날의 얼얼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과 맞서 뭔가 해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고 미국이 꼭 내 세상인 냥 기분이 좋았다.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데 혀가 짧아 처음 몇 달은 아주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어휘력과 문장력을 익히는 동안에는 최대한 밝은 미소와 친화력으로 소통했다. 꿈같은 하루 24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던지 숙제와 예습에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열이 나서 학교에 못 간 날도 있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고 계획대로 미국에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올라간 계단이 드디어 대학생활을 가져다주었으니 돌아보면 그 기회가 얼마나 감사하고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는지 몰라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서 전공을 고르려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몇 가지를 고민하다가 돈의 흐름을 읽을 줄 알면 세상의 흐름을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재무전공을 택했다.

재무전공으로 3학년을 보내고 있을 즈음 투자은행에서 일을 시작했다. 재무전공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그때 깨달았다. 1년 일하면서 배운 건 텔레마케팅기술이 전부였다.

재무에 대해 더 깊이 배우면 클라이언트들을 도울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당시 절친 중에 회계전공이 있었어요. 그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 놨더니 복수전공으로 회계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더군요. 회계와 재무의 교양과목이 같으니 회계과목만 채우면 되겠다며 좋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래 이거다는 생각에 당장 학교에 가서 회계와 재무를 복수전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렇게 해서 대학을 5년간 다니게 되었지요. 친구따라 강남 간다더니 전 친구따라 회계했네요. 그렇게 시작한 회계공부가 제 삶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고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전공에 필요한 일이라면 무조건 했다. 현지인과 같은 레벨에서 실력으로만 평가받고 싶었다.

여름방학에도 계절학기 9학점(3과목)을 들으며 풀타임으로 일을 했다. 그렇게 쌓인 작지만 소중한 경험들이 취업 면접을 볼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대학교 5학년 졸업반 시절 가장 큰 대형회계법인 4곳만 공략하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졸업하는 학생들의 높은 스펙보다는 회사의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에 더 집중한다.

대학 졸업 무렵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원하는 회계법인에서 오픈하우스를 한다는 정보를 알았다. 덕분에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니 마음에 드는 회계법인을 고를 수 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야기 나눈 사람들이 면접관들이었다.

그날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싶어요. 그렇게 시작한 회계사의 커리어를 지금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쓰리잡으로 직업이 다른 명함을 3개나 가지고 있다. 백화점의 회계전담 책임이사이면서 레스토랑 300개를 가지고 있는 작은회사의 회계실장을 겸하고 있다.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 배우려고 노력중입니다. 아직도 저는 많이 부족하고 세상엔 배울 게 너무 많거든요

미국에서 16년을 살다가 2016년 중동에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1년에 한 번 씩은 한국에 나가려고 합니다. 가족들이 한국에 있기도 하고 신랑에게도 한국을 아직 다 보여주지 못했거든요

언젠가 한국의 발전이 미국을 뛰어넘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고 한국이 예전의 미국처럼 기회의 땅이 될 거란 믿음도 갖고 있다.

세상에 은혜롭고 많은 사람을 돕는 위치에 있는 게 제 최종 꿈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는지는 다 알지 못합니다. 대신 최대한 내가 불편하게, 바쁘게 사는 게 그걸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많이 움직이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 그가 집중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신과의 대화다. ‘단군의 후예라는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2시간씩 자신을 알아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낸다.

두 번 째는 가족과의 시간 만들기다. 미국인 남편도 일이 많다 보니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얼굴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음악을 틀어놓고 저녁을 준비한다.

세 번 째는 회사에서의 변화경영이다. 어떻게 하면 간단한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회사 성장에 맞는 최적의 체계를 창출하기 위해 열심히 즐겁게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으니 자기 삶의 방향에 맞는 나라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다른 나라도 사람이 살고 어쩌면 자신과 맞는 나라는 한국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가면 갈수록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나도록 세상은 더 좁아지고 있지요. 이럴 때 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연연하지 말고 조금 더 멀리보고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한국만을 보는 게 아니라 세상 전체를 무대로 보면 기회는 정말 많거든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그녀는 분명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아니라며 펄쩍 뛴다.

어떻게 보면 모순이겠지만 제 큰 보람과 자부심은 제가 아직 모든 걸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게 많으니 더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어떻게 해야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될까를 고민한다는 이세은 씨의 말 속에 담긴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고민만 하고 앉아 있으면 안 되겠지요. 자꾸 조금씩이라도 내가 생각하는 방향에 맞게 움직일 작정입니다. 그래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계속하다 보면 뭔가 정리가 되겠지요

 

이세은 씨는 미국 회계 법인을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보다 중동, 유럽에서 더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중동에 있는 지사를 통해서 유럽 클라이언트들과 더 많이 일을 하고 있다. 미국에는 분기마다 한번 정도 들어가서 미국 본사 업무를 보고 있다.

 

"최근에는 제 나름의 숙원사업이었던 대학원도 졸업하고, 조금씩 제 전공 분야에서 더 나은 전문가가 되려고 견문을 넓혀가려 하고 있습니다. 주변 환경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살고 있는 방식이나 생각은 비슷한 것 같아요"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 이 기사는 인물뉴스닷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inmulnews.com/sub_read.html?uid=6106&section=sc1&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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