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험] 시련 딛고 '방송, 강연, 행사 진행' 제2전성기 누리는 뽀빠이 이상용

MC, 개그계 대부…“집은 20평, 건강은 80평, 행복은 150평에 삽니다”

김명수기자 | 입력 : 2019/03/07 [14:44]

[인물탐험시련 딛고 '방송, 강연, 행사 진행'2전성기 누리는 뽀빠이 이상용.

 

우리에게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는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아이들의 우상으로 군림했던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우정의 무대진행으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MC, 개그계의 대부다.

 

 

심장병 어린이 돕기에도 발 벗고 나선 그는 25년 넘게 발로 뛰며 성금을 모아 567명의 심장병 어린이를 수술하도록 물심양면 지원했다.

19444월생으로 76세의 노인이지만 건강미와 개그본능은 여전히 살아있다. 나 잘살 것 같나요? 그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준다.

20평에서 29년째 살어! 방이 두 개야. 마누라랑 한 방 쓰고 그래도 방 하나가 남어

그리고는 팔을 번쩍 들어올려 주먹을 불끈 쥐고 알통을 보여주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하는 말이 촌철살인이다. “집은 20, 건강은 80, 행복은 150평에 삽니다

행복은 재물도 명예도 아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뽀빠이 이상용이 그렇게 살고 있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나면~ 눈물이 납니다 ~~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그리운 내 어머니!

19894월부터 이상용이 8년 동안 고정MC를 맡으면서 전국 안방시청자들을 들었다놨다했던 우정의 무대인기코너 그리운 내 어머니는 아직도 우리에게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시금치와 뽀빠이 아저씨로 불리며 아이들의 우상으로 군림하던 그는 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군대예능프로그램 우정의 무대 진행을 맡으면서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국민MC로 승승장구했다. 천하의 MC 이상용에게 인생 최대의 시련이 닥칠 줄을 꿈엔들 알았으랴.

우정의 무대 진행자로 인기절정 시기에 누군가의 모함으로 심장병어린이돕기 공금횡령누명을 뒤집어쓰고 한방에 무너졌다. 3개월 만에 무혐의로 밝혀졌지만 모든 것을 잃었다.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25년간 헌신해왔던 그였기에 그 충격은 너무 컸다. 한국에서 방송 생명이 끝난 이상용은 도피하는 심정으로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한다.

국민 MC 이상용과 8년을 함께 하며 인기프로그램으로 장수하던 우정의 무대도 그 이후로 1년도 못 버티고 막을 내렸다.

 

▲ 2019년 1월 19일 도전한국인 본부(대표 조영관. 사진 가운데) 큰바위 얼굴상을 수상하고 포즈를 취한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오른쪽에서 2번째).

 

이상용은 빈손으로 미국에 건너가 관광버스 가이드를 하며 돈을 벌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날은 온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상용은 인기강사로 다시 부활했다. 9평 집에서 20평 아파트로 옮겨 29년째 살고 있다. 집살 때 받은 대출 빚도 16년 만에 다 갚았다.

건강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미숙아로 태어났다. 생후 3개월 무렵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외가 어른들이 구덩이를 파고 묻으려는 순간에 이모가 꺼내 안고 달아나는 바람에 구사일생으로 구출됐다.

어린 시절 극도로 허약했던 조카가 안쓰러웠던 삼촌이 아령을 사다주면서 건강하고 싶으면 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아령운동을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

대전고 3학년 때 근육빵빵보디빌더로 미스터 대전고에 뽑힌데 이어 고려대 시절 응원단장을 거쳐 ROTC 장교로 복무하는 기적의 변신을 거듭했다.

러브스토리도 한 편의 소설 같다. 고향 누나의 집에 찾아갔다가 늘씬하고 아름다운 미모의 운명 같은 여인을 우연히 만나 온갖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하고 장교로 입대한다. 여인은 군대간 남편을 기다려 줬고 남자는 1969년 제대후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현실은 냉혹했다.

외판원등 먹고 살기위해 온갖 일을 다했으나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방송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에 열심히 방송국을 찾아다녔다. 두드리는 자에게 기회는 온다.

무명의 긴 터널을 지나고 CBS 기독교 방송을 거쳐 1973MBC 유쾌한 청백전 게스트로 출연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후 여러 방송을 거치면서 인기가 올라가고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

어린이들의 우상이던 뽀빠이를 군인 아저씨들의 우상으로 만든 프로가 바로 우정의 무대였다. 국민MC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한동안 사람들의 마음에서 멀어져갔던 그가 우리들 곁으로 다시 돌아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상용은 2019119일 도전한국인 본부(조영관 대표) 큰바위 얼굴상을 수상했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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