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험] 한국 음악계의 산증인…얼굴 작곡가 신귀복

가곡, 학교 교가등 700곡 작곡한 노래 제조기…교육자로 후학양성에도 헌신 쏟아

김명수기자 | 입력 : 2019/03/02 [21:36]

[인물탐험] 한국 음악계의 산증인얼굴 작곡가 신귀복

 

한국인의 정서가 깃든 가곡을 들으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신귀복 원로 작곡가의 얼굴이 50년 넘는 세월을 국민애창가곡으로 군림하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다.

 

 

보고 싶다. 못 견디게 보고 싶다. 마음은 온통 그대 생각뿐이고 내 손은 자석에 끌리듯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동그라미는 어느새 눈과 코와 입이 달린 보고 싶은 얼굴로 변한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내마음 나도 모르게 무심코 그린 얼굴이다. 신귀복 선생이 작곡한 불후의 명곡 얼굴의 탄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1967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귀복 작곡가는 서울 동도중학교 음악교사였다. 얼굴을 작사한 심봉석 시인 또한 같은 학교 생물교사로 근무했다.

교장 주재로 열린 신학기 교무회의가 계속 길어지자 지루해진 심봉석 시인이 보고 싶은 첫사랑을 떠올리며 공책에 얼굴을 그리고 즉흥시를 썼다. 동료 교사 신귀복은 심봉석 시인의 그림과 시를 보고 즉석에서 5분 만에 멜로디를 입혀 곡을 완성했다.

같은 중학교 음악교사 신귀복과 생물교사 심봉석의 번뜩이는 재치가 만나 번갯불에 콩 튀기듯 후다닥 완성한 얼굴이 불후의 명곡으로 50년 넘게 온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을 줄 그 누가 알았겠나!

신귀복 작곡가는 이 노래를 1970년 가곡집에 수록했다. 그리고 4년 후인 1974년 윤연선이 리메이크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노래가 나온 이후 얼굴 작사가 심봉석 시인은 헤어진 첫사랑과 재회하여 결혼에 성공했으니 얼굴이 행운의 오작교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런 배경을 안고 탄생한 얼굴은 윤연선을 시작으로 임재범, 양희은, 소프라노 허순자, 테너 신동호 등 다양한 버전으로 불리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신귀복 작곡가는 19371월 경기도 안성 출생으로 경희대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작곡가겸 교육자로 우리에게 많은 행복과 기쁨을 줬으며 후학양성에 헌신해 왔다.

얼굴의 탄생 무대가 된 동도중학교, 동도공고 교단을 거쳐 금옥여고, 국립국악고등학교 교감, 서울시교육청 음악담당 장학사, 공진중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고 대학(경희대 음대 등)에서 화성학 강의를 해왔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어 작곡가, 교육자의 삶을 살아왔고 가곡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신귀복 선생은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워왔고 지금까지 동요, 가곡, 독주곡 등 700여곡을 작곡했다. 뿐만 아니라 광주가톨릭대학, 국립경찰대학, 서울과학고 등 89개 학교의 교가를 작곡하여 노래제조기라는 별칭도 얻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얼굴 물새알 산새알 골목길 말하기 좋다하고 제비 덕수궁 풀잎이 한 말 내 사랑아 넝쿨 타령 사랑을 그리며 산길에서 사랑의 언덕 안중근 편지 보고싶은 얼굴 등이 있다.

사랑하는 단원의 꽃들아~ 소중한 참꽃들아~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서 얼마나 무서웠니~

하늘에 띄우는 편지는 세월호 침몰사고로 숨진 단원고 희생자 학생과 유가족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만든 추모곡이다. 신귀복 작곡가도 교육자였기에 어린 희생자들의 아픔이 크게 다가왔고 피눈물을 흘리며 편지, 약속, 해국 등 추모곡을 완성했다.

얼굴의 후속곡 보고싶은 얼굴은 얼굴 발표 50년만에 탄생했다. 김치경 시인의 시를 받고 처음 얼굴을 만들었을 때처럼 단숨에 주루룩 멜로디를 써서 완성했다.

신귀복 작곡가는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한국서정가곡작곡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동음악대상, 대한민국 동요대상, 대한민국 작곡문화상, 한국가곡상, 큰바위얼굴상 등을 수상했다. 신귀복 작곡가의 고향 안성의 안성맞춤랜드에 얼굴 노래비가 있다.

20184월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에서도 신귀복 작곡가의 얼굴이 정인과 알리의 합창으로 울려 퍼져 북한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한국 음악계의 산증인이자 한국가곡의 예술적 가치를 끌어올리고 가곡의 대중화에 기여한 신귀복 작곡가의 창작활동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김명수/인물인터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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